화, 2022년 12월 13일 - 00:22
원가 이하 전기요금 제도는 사실상 에너지 ‘부자감세’
전기다소비자 ‘많이 쓸수록 이득’, 한전은 ‘많이 팔수록 손해’
- 원가 이하 전기요금은 전기 다소비자에게 보조금 주는 셈
- 산업용과 일반용(상업용) 상위 20개 고객, `22년 1~9월 기간 약 3조 8,068억 원 덜 내고 그대로 한전적자로 쌓인 셈
- 윤석열 정부, 시장기능 정상화하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엔 관심 없고 땜질식 미봉책에만 급급
- 한전 경영정상화 방안과 함께 취약계층,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부담 경감 방안 마련해야
현재 전기요금체계가 심하게 왜곡되어 있어, 한전은 많이 팔수록 손해를 보고, 다소비자는 많이 쓸수록 이득을 보는 기이한 구조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비례대표)에 제출한 ‘용도별 전력사용량 상위 20위 고객 판매현황’ 자료에 따르면, 산업용, 일반용(상업용)으로 계약한 고객 중 `21년 각 용도별 사용량 상위 20개 고객이 `22년 1~9월 동안 사용한 전력량은 총 49,639 기가와트시(GWh), 납부한 전기요금은 5조 290억 원이었다.
같은 기간 평균 SMP(전력도매시장가격)는 키로와트시당 178원, 평균 판매단가는 116원이다. 한전은 도매전기요금 원가를 반영하지 않아 1킬로와트시당 62원의 손해를 보면서 전기를 판매한 것이다.
한전이 전력도매시장가격을 반영해 전기를 판매했다면 약 8조 8,358억 원의 매출을 올렸을 것이지만 실제로는 57% 수준인 5조 290억 원만 받았기 때문에, 나머지 43%에 해당하는 약 3조 8,068억 원은 고스란히 적자로 쌓이게 됐다.
원가가 반영되지 않은 전기요금으로 이득을 본 것은 전기를 적게 쓰는 일반 가정이 아니라 전기를 많이 쓰는 소비자들로, 현행 전기요금체계는 전기다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주고 있는 셈이고, 이들은 사실상 특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산업용으로 전기를 계약하여 사용하고 있는 상위 20곳 중 전자 관련 대기업인 A기업은 사업장 별로 계약이 분리되어 각각 1위, 2위, 7위, 17위에 랭크되었다. A기업의 사업장 4곳전력소비량을 합산하면 8월 한 달간 1,750기가와트시의 전기를 사용하고, 2,076억 원의 전기요금을 납부했다. 8월 평균 SMP인 198원을 적용했다면 3,465억 원을 납부해야 했을 것이나, 원가 이하 전기요금으로 인해 해당 기업이 받는 혜택(보조금)은 8월 한 달 1,389억 원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일반용(상업용)으로 전기를 계약하여 사용하고 있는 상위 20곳 중, 위의 A기업은 1위와 5위에 랭크되었다. A기업의 사옥 두 곳에서 사용한 8월 한 달간 사용한 전력량은 101 기가와트시, 납부한 전기요금은 125억 원이다. 8월 평균 SMP인 198원을 적용했다면 200억을 납부해야 했을 것이나, 원가 이하 전기요금으로 인해 해당 기업이 받는 혜택(보조금)은 8월 한 달 75억 원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주거용 전기요금을 사용하는 소비자 중 최대 전기다소비 개인 B씨는 외국인으로 확인되었다. B씨는 `22년 1월 한 달간 29,812키로와트시의 전기를 사용해 2,068만원에 달하는 전기요금을 납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면서 천연가스 도입 가격의 상승은 발전용 가스요금 상승으로 이어졌고, 이는 고스란히 SMP에 반영되었다. 한전은 급상승한 SMP 가격으로 전력을 사왔으나, 소비자들에게 판매할 때는 이 가격을 반영하지 못해 전기를 팔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기이한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요금은 시장에 가격신호를 줄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전기요금은 전력시장의 왜곡으로 가격신호의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다.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구매한 도매요금과 원가를 반영하여 전기요금을 책정했더라면 위의 전기다소비 고객은 약 3조 8,068억 원의 전기요금을 더 납부했을 것이다. 소비자들은 전기요금을 절감하기 위한 대비책을 강구하여 전기 사용량을 줄였을 것이고, 요금이 정상적으로 가격신호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 말기에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여 전기요금 정상화의 기반을 마련했으니, 윤석열 정부는 이를 시행할 책임이 있다. 윤석열 정부는 시장논리를 중시한다고 늘 강조하면서도 정작 전력시장의 기능을 정상화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SMP 상한제로 전기가 거래되는 중간 단계에서 캡을 씌워 시장 왜곡을 가중시켰고, 대안 없이 한전의 회사채 발행한도를 늘리며 땜질식 정책 행보만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자본잠식이 우려되는 초유의 한전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 원인인 왜곡된 전력시장 구조를 바로잡아 원가를 반영한 전기요금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전기요금은 복지정책과 달리 소득역진성이 강하다. 원가이하의 전기요금 공급은 전기 다소비 대기업에 더 많은 보조금을 지원해주고 한전의 적자는 결국 국민들이 떠안게 될 것이다.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으로 일반 국민들이 아니라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처럼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손해를 보면서 전기를 판매할 것이 아니라 원가기반의 전기요금을 받고, 에너지 기본권이 필요한 이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 사회적·경제적 취약계층에는 에너지 바우처를 지급하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는 에너지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는 설비지원을 해주는 등 세심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끝>